전쟁을 통해 탄생한 발명품

잔혹한 역사 속에서도 기회는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부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티슈까지,
전쟁을 거치면서 탄생한 다양한 발명품을 소개한다.


전쟁이 남긴


참호전 레인코트 

트렌치코트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패션 아이템 인 트렌치코트는 원래 영국군 장교를 위한 군복이었다. 1850년대 크림전쟁 이후 장교들이 입는 모직 코트는 무거운 데다 방수 성능도 떨어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볍고 방수가 잘되는 개버딘 원단을 개발해 기존 레인코트에 접목한 것. 트렌치코트의 가벼운 무게와 방수 기능은 참호전 양상으로 흘러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춥고 습한 참호 속 병사들을 보호하며 빛을 발했다. ‘참호’를 뜻하는 ‘트렌치(trench)’가 코트 이름에 붙은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2)에서 세기의 스타 오드리 헵번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와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부상자를 위한 옷 

카디건

환절기에 즐겨 입는 카디건은 크림전쟁 당시 카디건 백작에 의해 처음 생겨났다. 카디건 백작은 크림반도의 매서운 바람을 견디기 위해 칼라가 없고 앞섶을 튼 스웨터를 만들어 병사들에게 입혔다. 편의성과 보온성이 뛰어난 카디건은 특히 부상당한 병사들이 오염된 옷을 갈아입고 치료를 받기에 용이했다. 카디건은 전쟁 이후 카디건 백작의 귀족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

Episode
카디건 백작의 군사 작전 능력은 형편없었다. 명성을 얻기 위해 매관매직으로 사령관이 된 그는 발라클라바전투에서 말도 안 되는 전진 명령을 내려 병사들을 전멸 직전까지 내몰았다. 전장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온 그는 전투의 성과와 상관없이 대중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파일럿의 눈을 보호하라!
선글라스

1925년 미국 공군의 존 매크레디 대령은 바슈롬사에 공군 조종사의 눈을 보호할 수 있는 안경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종사들이 태양 빛과 구름의 반사광으로 인한 시력 저하와 두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작된 것이 현대식 선글라스다. 최초의 선글라스는 렌즈가 검은색이 아닌 녹색이었다. 초창기 공군에만 납품하던 선글라스는 1937년 설립된 ‘레이밴’이라는 브랜드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레이 밴 보잉 선글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맥아더 장군의 아이템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포화 속에서 시간을 확인한다
손목시계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남성의 시계는 회중시계였다. 이러한 인식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포격과 공격 신호에 맞춰 참호에서 나와 돌격해야 했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이 작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주머니 속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기에는 전장의 상황이 매우 긴박했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는 회중시계를 가죽 스트랩에 넣어 손목에 착용하기도 했다. 이후 점차 편의성을 높이다 보니 현대의 손목시계 형태로 발전했다. 당시 손목시계는 군인의 필수품으로 홍보되면서 ‘멋진 남자의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기기 위한 기술


전투기 조종사를 위한 청력 보호 기술
노이즈 캔슬링

최근 블루투스 이어폰에 적용된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처음 조종사의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됐다. 전투기 조종사나 NASA 우주인 등은 비행할 때 엄청난 소음을 견디면서 본부와 소통해야 했다. 또 엔진 소음을 지속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당시 은퇴한 조종사 10명 중 6명은 소음성 난청이라는 심각한 직업병으로 고생했다. 이런 이유로 1978년 미군은 BOSE사에 노이즈 캔슬링 기술 개발을 의뢰했고, 1986 년 군용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첫선을 보였다.


소련의 인공위성에서 영감을 얻다
GPS

1970년 초 미국 국방성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GPS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응용물리학연구소 연구원의 아이디어 에서 출발했다. 그는 소련이 발사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라디오 신호에서 영감을 받아 주파수를 이용해 인공위성의 위치를 확인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후 이를 역이용해 인공위성에서 지구의 신호를 통해 지상의 좌표를 관측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 GPS 다. 초창기에는 핵잠수함의 미사일 타격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했다.


우연히 발명한 필수 가전
전자레인지

군수 기업 연구원 퍼시 스펜서는 레이더 장비에 쓸 마그네트론을 연구하던 중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이 전부 녹은 사실을 알았다. 주변에 열을 발생할 어떤 장치도 없었기 때문에 마이크로파에 의해 일어난 일 이라고 판단한 그는 이후 여러 실험을 거쳐 전자레인지를 발명했다. 1946년 처음 출시될 당시에는 전자레인지가 아닌 ‘레이더레인지’라고 불렀다고. 


암호 해독을 위해 개발한 연산 기계
컴퓨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사용하던 기계식 암호기 ‘에니그마’는 사람이 직접 해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계산이 복잡했다. 이에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튜링 머신’으로도 부르는 ‘봄브’를 개발해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해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때 발명된 튜링 머신의 이론은 현대 컴퓨터 기술의 바탕이 되었다. 이런 일화는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핵전쟁을 대비한 통신 기술
인터넷

1960년대 냉전 시기, 미국 국방부는 핵전쟁으로 전화국이 파괴되었을 때를 대비해 통신 기술을 연구했다. 연구 끝에 하나의 메시지를 작은 ‘패킷’ 단위로 분할해 전송하는 ‘패킷 교환 방식’을 사용하는 네트워크 ‘아파넷’을 개발했지만, 냉전의 기류가 사그라들면서 아파넷 프로젝트는 종결되었다. 이후 월드와이드웹(www)이 개발되며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아름다운 천재 발명가의 작품
무선통신 기술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인 동시에 발명가였던 헤디 라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란민이 탑승한 영국 여객선이 독일 U보트의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연합군을 도울 방법을 연구했다. 라마와 그의 친구이자 작곡가 조지 앤틸은 피아노의 공명 원리에 착안해 ‘주파수 호핑’ 기술을 개발, 1942년 특허를 출원했다. 이후 이 기술은 휴대전화 등 무선통신기기에 쓰이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로 발전했다.


전쟁 중 요긴하게 쓰인 생활용품

 

잉크가 따로 필요 없는 만년필
볼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적인 물자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종이 역시 질이 매우 떨어져 날카로운 만년필 촉에 종이가 찢어지는 일이 잦았다. 헝가리 기자 라즐리 비로는 진흙이 묻은 공이 굴러가는 것 에서 영감을 얻어 1938년 잉크가 있는 펜 끝에 볼을 달아 작은 마찰에도 잉크가 묻을 수 있는 볼펜을 개발했다. 높은 고도에서도 잉크가 새지 않아 영국 공군에 대량 공급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탄약을 보존하기 위한 도구
비닐 랩

1933년에 첫선을 보인 비닐 랩은 전쟁 중 총알과 화약을 습기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한 제조업체 기술자의 아내가 나들이를 가기 위해 상추를 비닐 랩에 포장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1949년부터 비닐 랩은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제품으로 상용화되어 현재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부상자를 위한 발명품
티슈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참전 초기 전쟁 물자 부족으로 곤혹을 치렀다. 특히 야전병원에는 붕대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킴벌리 클라크사는 면보다 5배나 흡수력이 높은 ‘셀루코튼’을 개발해 군에 납품했다. 셀루코튼은 붕대 대용으로는 물론 방독면 필터, 생리대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다. 이 회사는 전쟁 이후 엄청 난 양의 셀루코튼 재고를 활용하기 위해 이를 얇게 제작해 1924년부터 ‘크리넥스 티슈’를 판매했다.


지금 더 사랑받는 전투식량


애국 식량에서 스팸 메일까지
스팸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가공육 전투식량의 필요성을 깨달은 제이 호멜은 전쟁이 끝난 후 여러 연구를 거쳐 1937년 스팸을 출시했다. 스팸은 호멜사가 1927년 출시한 넓적다리 햄 통조림 제조 후 처치 곤란한 부산물을 갈아 제조한 것으로, 싼 가격과 훌륭한 맛으로 인기를 끌어 주력 상품이 되었다. 유통과 보관이 간편한 스팸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사랑받았지만, 과도한 공급으로 인해 ‘스팸 메일’의 어원이 되었다.


버터보다 보관하기 쉬운 지방
마가린

1869년에 화학자 이폴리트 메주무리에가 버터를 대체하기 위해 발명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당시 전쟁 대비로 인해 버터 수급이 어려워지자 보관하기 쉽고 값이 싼 지방 제품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초기에는 생선 기름과 고래 기름을 사용해 악취가 나고 맛도 없고 색도 회색에 가까웠지만, 이후 식물성기름으로 대체되면서 현재의 노란색과 비슷해졌다.


코카콜라에 목말라 개발한 음료
환타

다양한 과일 맛이 특징인 환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처음 만들었다. 전쟁 직전 연간 450만 병을 수입할 정도로 코카콜라에 열광하던 독일은 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과의 물자 교류가 중단되자 코카콜라의 수급이 어려워졌다. 대책을 강구하던 코카콜라 독일 지사의 막스 카이트는 유제품 찌꺼기와 사과즙 등을 활용해 단맛이 나는 환타를 개발했다. 종전 후 코카콜라 본사가 독일의 환타 공장을 인수하면서 현재 우리가 아는 과일 맛 환타가 탄생하게 됐다.


<Den> 167호 <전쟁을 통해 탄생한 발명품>
에디터 정지환 | 사진 셔터스톡, 알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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