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을 준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유지연

“최고의 공연장에서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

<Den>이 ‘희로애락의 표정을 담은 연주를 들려주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소개했던 유지연.
더욱 깊고 아름다운 선율로 돌아온 그녀를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이스트만 음악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과정을 밟으며 콘체르토 컴페티션(Concerto Competition)에서 우승했고, 유니버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University Symphony Orchestra) 악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박사 졸업논문 ‘Musical Borrowing in Contemporary Violin Repertoire’가 미국의 학술 연구 정보서비스 프로퀘스트(ProQuest)에 의해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고, 이 논문은 현재 미국에서 학업 자료로 쓰이고 있다. <Den>이 그녀를 ‘라이징 스타’로 지목해 인터뷰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녀는 이제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모처럼 공연 소식을 들고 돌아온 그녀를 만나 근황을 물었다. 

오랜만의 인터뷰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코로나19로 예술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에는 다들 힘들어했는데, 오히려 새로운 포맷이 등장 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유튜브나 네이버 중계를 통해 클래식 공연을 라이브 스트리밍하는 사례가 등장했고, 새로운 공연의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은 라이브가, 음악 교육은 ‘일대일 도제식 교육’이 최고라고 믿었던 큰 줄기가 흔들리고 있다. 요즘은 시대에 맞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교육과 연주를 겸행하니 이 기간에는 교육에 치중했다. 음악에 희망과 뜻을 품은 샛별들을 가르치는 시간은 의미 있고 즐거웠다. 내가 배운 것을 나누고 역으로 학생들에게 배우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연주자는 큰 공연을 위해 공부하거나 무대에 서야 소진된 창조성과 에너지가 채워진다. 이제 다시 연주자로서 스스로에게 집중해 좀 더 채워 달려가려 한다.


이번 연주회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오랫동안 꿈꿔 온 소나타들을 무대 위에 올린다. 베토벤과 브람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들이다. 등산가에 비유하면 언제나 올려다보기만 하는 산이라고 할까. 어릴 때는 이번에 무대에 올릴 곡에 대해 음악적으로 확신이 없었고, 앞으로 젊은 시절을 지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질 것 같았다. 아직도 정신적·체력적으로 힘든 곡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산에 오를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무대마저 독주자로 서기에 매우 큰 산인 롯데콘서트홀이다. 어찌 보면 이번 연주회는 내게 인생의 커다란 분수령을 넘는 듯, 도전적인 등산처럼 느껴진다.


롯데콘서트홀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객석 구조인 빈야드식 공연장으로 유명하다. 이 공연장의 특징은?

음악과 연주자를 가운데에 두고 관객이 이들을 둘러싸는 형태다. 빈야드 구조의 공연장에서는 어느 자리에서도 연주자들의 다양한 면을 관찰할 수 있다. 세계 최고 공연장으로 꼽히는 미국 디즈니 홀, 독일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닉 홀, 일본 선토리 홀 등이 같은 구조다. 롯데콘서트홀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공연장이다. 이런 큰 무대에서 독주회를 열게 돼 굉장히 설렌다.

© 롯데콘서트홀

롯데콘서트홀과의 시너지를 위해 준비한 게 있나?

주로 사용하는 악기는 3개가 있다. 200년 정도 된 올드 바이올린과 50년 정도 된 모던 바이올린, 아무도 사용한 적 없는 ‘브랜드 뉴’ 바이올린이다. 어떤 바이올린을 사용할까 고민하다 50년 정도 된 악기를 선택했다. 롯데콘서트홀이 워낙 넓은데다 울림이 좋다 보니 그런 부분을 홀이 많이 도와준다. 대신 큰 규모를 악기 두 대가 가득 채워야 하는데, 무대 끝까지 전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연장에 어울리는 음색을 지닌 악기를 선택했다.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달라

어떤 면에서 음악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믿고 있다. 특히 베토벤의 곡을 들으면 그런 느낌이 강하다. 그의 곡을 들을 때는 베토벤이라는 인간의 몸을 통해 신이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브람스는 끊임없이 그 신을 경외하고 그에 도달하고자 몸부림치는, 위대하지만 너무나 인간적 고통이 느껴지는 작곡가라 많은 부분이 공감된다. 작곡가에 대한 경외심과 연민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런 작곡가다.


브람스와 베토벤의 접점이 있나?

베토벤은 브람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운구 맨 앞에 섰던 슈베르트를 포함해 수많은 작곡가들이 베토벤을 우러러보았다. 그럼에도 베토벤에 미러링될 만큼의 작곡가로 평가받는 이는 브람스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라고도 불릴 만큼 베토벤을 향한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곡이다. 존경심뿐 아니라 베토벤에 대한 열등감으로 무려 20년 동안 끊임없는 퇴고를 거듭해 완성했다고 한다.
바이올린소나타 1번도 그의 교향곡 1번을 쓴 시기와 비슷한데, 여러 곡의 소나타를 작곡한 후 모두 찢어버리고 이 곡을 1번으로 삼은 산고가 느껴진다. 브람스의 2·3번 소나타는 여러 번 연주했지만, 1번은 엄두가 나지 않아 지금까지 미뤄온 곡이다.


이번 공연을 관람할 때 팁이 있다면?

흔히 브람스 하면 가을, 가을 하면 브람스라고 한다. 사실 소나타 1번은 여름휴가지에서 완성했다. 그의 가곡 중 하나인 ‘비의 노래’를 인용해서인지, 인간적 고뇌와 그 산통이 느껴져서인지 아름답지만 쓸쓸한 가을 감성과 잘 어울리는 곡이다. 이 곡을 듣기 전에 그의 가곡도 많이 감상해 보면 좋다. 그리고 그런 브람스가 일생을 두고 좇은 작곡가의 작품인 크로이처 소나타를 후반에 연주한다. 전·후반 공연을 브람스와 베토벤의 인간적 관점에서 들어보는 것도 좋다.

“호기심이 강해 하나를 시작하면 점점 깊이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학구적인 부분에 욕심을 낸 이유다. 더 많은 것을 공부해 연주하고 싶지만, 여전히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는다. 가끔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는 지식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부분은 음악적 본능에 맡겨 보려 한다.”


피아니스트 정민정과의 호흡도 기대된다

정민정 씨와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에도 함께 다닌 ‘절친’이다. 어릴 때는 음악적 욕심 때문에 가끔 부딪치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모습을 보이다 보니 그것이 서로의 음악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어 가장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올릴 두 곡 역시 존중과 친분 (브람스와 요아힘, 베토벤과 크로이처)이 넘쳤던 연주자들과의 관계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런 우정, 호흡이 빚어내는 시너지를 주목해 주셨으면 한다. 또 음악평론가 장일범 선생님이 두 절친의 연주를 위해 우정으로 해설을 도와주기로 했다. 어려운 클래식을 가장 즐겁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분인 만큼 클래식이 낯설더라도 쉽고 편안하게 연주회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지연에게 바이올린은 어떤 의미인가?

10년 전에는 ‘인생의 전부’, ‘마약 같은 존재’라고 말한 것 같다. 지금은 ‘양날의 검’ 같다고 느낀다. 나에게 바이올린은 행복도 주지만 불만족도 함께 준다. 연주를 하는 순간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벌받는 듯한 기분도 느낀다. 또 연주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에 음악과 바이올린에 깊이 빠질수록 인생의 다른 부분은 놓칠 수밖에 없다. 지난 독주회 때에는 ‘날씨 좋은 계절에는 독주회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단풍 구경은 물 건너간 것 같다.(웃음) 이제는 연습실 안에 갇혀 연습만 하기보다는 세상만사를 더 느끼고 그것을 나의 연주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만큼 인생의 밸런스도 잘 잡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 포부가 있다면?

수백 년 전에 만든 악기로 수백 년 전의 음악을 연주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포맷에 스스로를 적응시키고 싶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나에게도 음악은 언제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이제 스스로를 조금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음악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이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데 힘쓰고 싶다.


이 인터뷰를 보고 ‘바이올린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든 독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용기를 내라! 요즘 취미로 골프를 치는데, 잘하지 못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유명한 프로님께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실력이 너무 부족해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그분을 통해 높은 차원의 골프 인생을 접한 경험이 너무나 좋았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인생이 다 통하더라. 취미란 그런 것 같다. 취미 생활을 하며 본업을 더 잘 이해하고, 그 일에 지친 나를 위로해 주는 것. 나 또한 전공하려는 학생뿐 아니라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교육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다.


10년 전과 지금, ‘유지연의 바이올린’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날카로운 질문이다. 사실 나 스스로 회피하던 질문이기도 하고. ‘나는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연주자와 마찬가지로 충족되지 않는 스스로의 연주에 대한 불만족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더 신경 쓴 것 같은데 지금은 나 자신이 가장 두렵다. 내 인생의 모든 걸음걸음에서 일어나는 선택이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 스스로를 만족시켜야 음악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Profile 유지연
•現 서울오케스트라 악장
•TIMF 앙상블, 에라토앙상블
•앙상블 Creo 멤버
•미국 알바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
•노스플로리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악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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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 170호
<비상을 준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유지연
“최고의 공연장에서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
에디터 김구용 | 포토그래퍼 김동오 | 장소 협조 청담나인(02-2002-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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